어느날 갑자기 어떤 한 생각이 내 머리를 띵 하고 울렸다.

아이가 행복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내 아이가 불행할 것임을 지레짐작하고 아이의 선택권을 없애버리는 일종의 폭력일 수 있지 않을까? 

 

예전의 나는 결혼도 생각이 없었고, 아이를 낳는 것엔 더더욱이 생각이 없었다.

인구 과잉 시대에 살고 있고, 인간은 지구를 좀먹고 파괴하는 존재라고만 생각했다. 또한 부모의 영향을 그대로 흡수하고 자라는 아이가 두려웠다. 내 행동 하나하나가 아이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게 미치도록 두려웠고, 지금 역시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른 생각을 갖게되었다.

https://youtu.be/Y_n1koWhS0Y

이 조던 피터슨의 영상을 보고 인구과잉 문제에 대해서는 이 사람의 논리로 깨지게 되었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새로운 관점도 갖게 되었다. 

가장 와닿은 얘기는 '인간은 소비자임과 동시에 생산자이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자신들을 너무 소비자로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소름끼친다'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소비하며 자원을 파괴할 수 있지만 그와 동시에 그에 대한 자정작용자체도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인간의 역사를 비관적으로만 바라봤었는데, 이 영상을 보면서 인간이 그렇게 해로운 존재는 아니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아이를 낳지 않을 이유 하나가 사라졌다

 

https://youtu.be/6Z9Uns5JNls

이 영상은 아이들이 성장하는데에 부모의 영향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연구결과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다.

아이들이 부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생각되는것은 유전적인 요인이며, 오히려 영향을 많이 주는 것은 환경과 또래 집단이라고 영상에서는 얘기한다.

이 영상은 내 마음을 너무도 편하게 만들어줬다. 물론 100% 동조하고 아무렇게나 키워도 되겠다가 아니지만 그래도 일찍부터 낳지도 않은 아이에게 이만큼 쌓여있던 죄책감 혹은 짐이 좀 덜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또 하나의 아이를 낳지 않을 이유가 사라졌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남은 이유는 '행복'이란 추상적인 문제이다.

어떤 이들의 삶은 너무도 불행하기만한 것 같고, 어떤 이들의 삶은 행복해보이기만 하는 것 같다.

근데 불행해보이는 사람은 정말 불행하기만하고 행복해보이는 사람은 행복하기만할까?

행복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지 밖에서 수치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최근 어떤 설문을 받았는데 '얼마나 행복하세요? 0-100점으로 매긴다면?'이란 질문에 80점이라 대답했고, 그게 그날의 최고 점수였다는 얘길 들었다.

그렇다고 20만큼 불행한 것은 아니고 그냥 좀 아쉬운 부분이 20 정도 인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스스로 행복해지는 법을 배우기까지말이다.

물론 그전까지의 내 삶은 불행하진 않았지만 행복하다고 특별히 생각하지 않고 살아왔었다.

한동안 꽤 심각한 회의론자로 살아가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냥 우연한 계기에 쉽게 행복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을 깨달았고 그냥 그렇게 살고 있다.

그래서 요즘은 내 아이도 그럴 수 있지않을까? 아이의 삶이 꼭 불행하지만은 않을거야. 내가 행복하게 해주면 되니까.

이런 한편으론 이기적일 수 있는 생각을 하게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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